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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이 바뀌어 점수를 따기 위해 적극적 자세로 임하다

상사에게 전입초반 밉보인 이미지를 해소하고 어렵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는데,얼마 후 이임하시고 새로운 국장님이 오셨다.직원들에 의하면 새로 오시는 국장님은, 청주에 두번 째 근무인데 카리스마도 있고 대단하신 분으로 소문이 났다. 그 때가 20대 중반으로 이제 군에도 다녀 오고, 전문 직업인으로서 일은 물론 다방면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서였다.이런 마음은 군에서 고생하며 터득한 교훈으로, 특히 하사 생활하며 분대장으로서 경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새로 부임하신 국장님이 오시고 얼마 안되어 전직원 회식이 있었다.회식 때 반주 한잔하고서 조용한 틈을 타 국장 관사에 찾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관사가 청사 내에 있어 직원들 눈치 보며 가야 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전방 하사 출신의 자신감을 갖고 관사에 찾아가 용감하..

고향 청주에서 공직생활 터전을 잡다

군 제대 후 4개월만에 고향 청주로 발령받았다. 12월 중순 무렵인데 연말에 가장 바쁜 우편주임으로 보직되었다.그 당시는 연말 연시에는 성탄카드및 연하장이 오가던 시절이라, 우체국에서는 12월11일부터 다음 해 1월 10일까지를 '연말연시 우편물 특별 소통기간'이라 정하고, 아르바이트생을 몇 십명씩 채용하고 전직원이 본연의 업무보다 우선적으로 우편물 분류작업에 투입되곤 했었다. 우편 주임의 역할은 작업 요원들이 원활하게 일 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 주고, 우편물 소통 상황을 관내국에서 보고 받아 집계하여 상부에 보고하고, 반송되는 우편물이라던가 미납 우편물 처리와 우체통에서 발견된 습득물을 처리하는 업무였는데 끝이 없었다. 전직원이 새벽같이 출근하여 우편물 작업에 투입되어 처리하여도, 우편물은 매일 산..

군 제대 후 본격적인 공직생활이 시작되다

파란 만장한 군 생활 33개월은 고생도 많고 아픔도 있었지만, 인생 삶과 공직관 정립 그리고 사회생활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일반 병으로 갔다 중간에 하사로 차출되어, 원주 제1 하사관 학교에서 3개월 교육 받고, 다른부대로 전출되어 강원도 화천 곳곳에서 분대장 생활하고 전역했는데, 추억도 많고 배운 것이 많다. 제대 후에 군에 가는 사람들 보고 자주 했던 말이, 군에서 인생 삶에 많은 걸 배우기 때문에, 군대가 우리나라 최고 명문 대학보다 더 좋은 학교란 얘기를 하곤 했었다. 직장 생활하면서도 직원들 행동하는 모습 보고, 군에 갔다 왔나를 판단하곤 했었는데 대부분 정확했다.평상 시 보통 때는 잘 모르는데, 문제 발생이라던가 위기 상황시에 어딘가 모르게 차이가 남을 알 수 있었다. 전역한지 반세기가..

온천으로 유명한 관광지 수안보에 근무하다

77년 12월 수안보 우체국으로 발령났다.고향 미원에 공직 초임 발령 받은 지 1년 만에 네번 째 발령이니, 새내기 시절 얼마나 좌충우돌 하며 보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당시 수안보는 관광지였지만 충주에서 수안보까지 비포장 도로였고 다음 해 포장이 되었다.그 때도 어머니께서 오시어, 이삿짐 싸서 같이 버스를 타고 타향살이 하러 수안보에 갔다. 하숙집을 구하려 했으나 하숙하는 집이 없어 여인숙에 방을 구했는데, 마침 그집 딸이 우체국에 근무했다.그 집에서 군에 갈 때까지 있었는데 휴가 나와 들렀을 때, 남자분은 작고하셨다고 하여 애석해 하기도 했었다. 그 해 수안보 국장님은 정년이셨고, 청사를 신축해서 가자마자 기념식을 하느라 어수선 하고 낯설었다.새로 부임하신 국장님은 군에 가서도 편지를 주고..

좌충우돌 새내기 공무원 은인을 만나 살아나다

충주우체국 조리계에서 새로운 업무를 맡아 열심히 배워가며 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고 직원들과 충돌이 잦았다. 먼저 두살 많은 선배와 시비가 붙어 싸움을 했고, 얼마 후엔 교환 계장하고 언쟁을 했다.교환 계장은 부하 직원들이 많고 힘이 막강한 사람이었는데, 감히 새내기가 까불었으니 남들이 보면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학창시절엔 누구와 다툼 한번 없이 모범생으로 생활했지만, 직장에선 업무 때문에 직접 부딪혀야 하니까 시비 거리가 되곤 했다.나중에 알고보니 의욕만 앞서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라 판단되었다. 충주로 간 지 얼마 안되어 두번이나 사고를 쳤으니, 적성에 맞지 않나 생각도 되고 겁이나 대책없이 무작정 사직서를 제출했다.사표를 내고는 출근도 안하고 이틀 간 하숙집에서 있었다. 이틀 쉬고 3일 ..

공직 업무다운 일을 맡아 해보다

업무과 조리계에서 맡은 업무는 전화 수요조사, 전화 점검, 공중전화 요금 수거였다. 공중전화 요금 수거하는 일은 매일 자전거를 타고 공중전화 부스에 가서 동전을 꺼내어 계기판과 대조하여 수납창구에 납부하는 일이었다.그 당시는 공중전화가 많지 않은 시절이라 그리 힘들지는 않았지만 자전거에 싣고 다니는 게 편치는 않았다. 전화 점검은 기술과 직원하고 1개조가 되어 같이 다녔는데, 기계쪽은 기술과 직원이 확인하고 행정적 사항만 확인하였다.행정적 사항이라 함은 정식으로 허가받아 사용하는가 하고, 구내 교환원인 있는 곳은 종사자가 정식 자격을 취득한 사람인가 등을 확인 하는 일이었다.그런데 많은 업소에서 직원 봉급을 적게 주려고, 자격증이 없은 사람을 채용하여 운영하는 곳이 있었고, 기계 쪽은 허가를 받지 않고 ..

객지에서 공직 생활이 시작되다

고향에 첫 발령을 받은 지 3개월만에 충주로 발령을 받고, 어머님과 함께 이삿짐을 버스에 싣고 우체국 인근에 하숙집을 구했다.이제 비로소 사회 생활을 하는구나 생각이 들고 낯설고 두려웠다. 발령난 부서가 회계계인데 담당업무는 전화요금 집계해서 고지서를 발급하는 일이었다.아마, 상업학교를 나와 주산을 잘할 것으로 알고 발령한 듯 했다.그런데 주산은 고등학교 1학년 때 3급 자격을 딴게 전부라 또 어려움이 봉착됐다.아침에 출근하면서부터 하루종일 주판으로 고지서 집게하는 작업인데, 아직 공직 생활이 다저지지 않아 쉽지 않았다. 객지이지만 청주우체국에서 학교 선배분들이, 충주 지인들에게 후배이니 잘좀 도와주라고 전화를 해 그래도 위안이 되었다.그렇지만 담당업무가 하루동일 주판알을 튕기는 일이라, 공직 생활이 ..

공직 초임 발령의 설렘과 두려움 2

-직원 구성및 직장 분위기 - 직원은 집배원인 7명, 교환원 6명, 전보배달원1명, 사무실 직원 5명 등 모두 20명 정도 되었다.지금 면 단위 우체국 2- 3명이 근무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전신전화가 82년도 분리되고 우편 집배원은 집배 광역화에 따라 청주우체국으로 통합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향이라 집배하시는 분은 형님 친구분도 있었고, 우리집을 배달하시는 분은 전부터 알고 있었고, 대부분 학교 선배님들이라 편안했고, 특히 국장님은 동창 아버지에다 한 마을에 살았는데 아버지보다 몇살 아래로 같이 크고 잘 아는 사이였다. - 신고식 - 정식으로 발령도 받기 전에 직원분들하고 관계를 원만히 하고 일을 잘 알려 달라는 의미로, 부모님에게 용돈을 빌려 전직원 회식을 크게 했다.40년 근무하..

공직 초임 발령의 설렘과 두려움1

- 공직 입문의 자세 회고 - 지금에 와 솔직히 고백하면, 공직 입문 당시 공무원이 무슨 일을 하는 지도 잘 몰랐고,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 까 확신과 사명감도 없이, 원서 접수 몇시간 전 우연찮게 친구를 만나 시험 정보를 얻어 시험을 보고 , 얼떨결에 공무원이 되었기에 초창기 시절은 입사초부터 천방지축이었고 시련의 연속이었다. - 초임 발령를 기다리며 - 76년 6월 공무원 시험 합격 발표를 보고, 공무원의 길을 가고자 그 동안 해오던 학업에 대한 부담없이, 고향에서 친구들과 한가롭게 지내며 여유로운 생활을 했다고등학교 진학하며 3년간 부모님과 떨어져 살다 다시 부모님과 같이 생활했는데, 부모님께서는 아들이 공무원 시험 합격하고 집에서 쉬니까, 편안하게 대하시고 간섭을 안하셨다.그 해 10월 무렵 ..

운명처럼 공무원이 된 사연

올해가 고등학교 졸업 한 지 50년이 되는 해인데 이 글을 쓰게 돼 뜻이 깊다고 생각한다.76년 고등학교 졸업한 후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려고 고향 미원 부모님 집으로 갔다.고등학교 입학하면서 나왔다가 3년 만에 짐을 싸가지고 부모님 곁으로 간 것이다. 당시 부모님께서는 별 말씀 안하시고 공부를 계속 하라고만 하시고 간섭을 안하셨다.하지만 필자는 전에 자주 못 만났던 고향 친구들과 술 마시며 놀기에 바빴다. 그러던 2월 어느 날 갑자기 청주에 나가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아버지께 청주 다녀 온다고 1,000원만 달라고 하니까 묻지도 않고 돈을 주셨다.전 같으면 천원 달라고 하면 이 삼백원은 줄여서 주시곤 하시던 아버지신데 그 날은 다 주셨다.아버지는 물려받은 재산이 많지 않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