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근무지별 추억 회고

고향 청주에서 공직생활 터전을 잡다

hsw235 2026. 5. 7. 18:30

군 제대 후 4개월만에 고향 청주로 발령받았다.

 

12월 중순 무렵인데 연말에 가장 바쁜 우편주임으로 보직되었다.

그 당시는 연말 연시에는 성탄카드및 연하장이 오가던 시절이라, 우체국에서는 12월11일부터 다음 해 1월 10일까지를 '연말연시 우편물 특별 소통기간'이라 정하고, 아르바이트생을 몇 십명씩 채용하고 전직원이 본연의 업무보다 우선적으로 우편물 분류작업에 투입되곤 했었다.

 

우편 주임의 역할은 작업 요원들이 원활하게 일 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 주고, 우편물 소통 상황을 관내국에서 보고 받아 집계하여 상부에 보고하고, 반송되는 우편물이라던가 미납 우편물 처리와 우체통에서 발견된 습득물을 처리하는 업무였는데 끝이 없었다.

 

전직원이 새벽같이 출근하여 우편물 작업에 투입되어 처리하여도, 우편물은 매일 산더미같이 쌓여 나갔다.

아무리 하여도 제때 소통이 안되다 보니, 결혼 청첩장이라던가 부고장 그리고 각종 모임 안내장등이 지연 배달되었다고 민원은 빗발치고 그야말로 전쟁터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편계가 이렇게 바쁜 중도 모르고 앙성에서 올 때, 크리스 마스 이브날 여선생하고 충주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전직원이 우편물 구분 작업에 투입되어 일하고 있어서, 감히 누구한데 이야기 하기가 엄두가 안나 소리없이  사라졌다.

 

다음 날 출근 해 보니 직원들 눈치가 이상하고 담당계장님한데 심한 꾸중을 들었다.

전직원이 일하고 있는데 전입온 지 얼마 안된 우편 주임이, 크리스 마스 이브 날 어디가고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고 할 말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날 빠진 사람이, 충주서 도와준 선배분하고 또 환영해 주며 소개해준 그 분하고 셋이  그날 없어졌다고 국장님에게 보고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일 잘한다고 소문 난 그 선배분도 당시 국장님에게는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국장님은 청주로 오게된 게 그 선배분으로 알고 있었던 모양으로, '그 사람이 데리고 온 사람 별수 있겠냐'라고 했다고 한다.

 

아뭏튼 일은 벌어진거고 그날부터 담당업무에 열과 성을 다했다.

매일  24시간 근무자들 업무 마감시간인  11시 12시까지, 반송우편물과 습득물 처리 등을 세밀하게 처리하고 퇴근했다.

반송우편물이 매일 큰 자루로 하나씩 되었는데, 반송 우편물은 하나하나 개봉하여 편지 속에 주소가 있으면 모두 보내 주도록 되어 있는데, 그리 하기가 쉽지는 않았고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인내심이 있어야 가능했다.

 

그런데 하루에 몇번씩 국장님 결재가 있는데, 갈 때 마다 누구 협조 맞고 와라 아니면 다시 해 와라 하며 힘들게 했다.

똑같은 사항이라도 계장이 가면 바로 결재가 되고, 내가 가면 어렵게 하니 야속하기도 하고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잘못한 게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참고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세월이 3개월여 쯤 됐을 때, 평소 대로 긴장을 하고 국장실에 결재를 들었갔는데, 그 날은 국장님께서 처음으로 자리에 앉으라 하시며,' 처음에 안좋게 봤는데 요즘 열심히 일 잘하대요' 하시어, 너무나 감격해서 나오자마자 화장실에 가 혼자 울었다.

몇달 동안 얼마나 설움을 받고 힘이 들었나 눈물이 났고, 지성이면 감천이란 옛말이 떠올랐고 감개 무량했다.

 

40 여년전 일인데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르고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80년대 들어 정보통신산업의 급속한 발전으로 우편물이 급격히 줄어 들었고, 90년대 들어 연하장 안주고 안받기라는 사회적 붐이 일어나, 언젠가 부터 우체국에서도 '연말연시 우편물 특별 소통기간'이란 큰 연례 행사가 역사속으로 살아지고 말았다.

평생 몸 담았던 우체국이 우편물 감소로 운영에 어려움이 있어 안타깝고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