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근무지별 추억 회고

공직 초임 발령의 설렘과 두려움1

hsw235 2026. 3. 2. 17:32

- 공직 입문의 자세 회고 -

 

지금에 와 솔직히 고백하면, 공직 입문 당시 공무원이 무슨 일을 하는 지도 잘 몰랐고,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 까 확신과 사명감도 없이, 원서 접수 몇시간 전  우연찮게 친구를 만나 시험 정보를 얻어 시험을 보고 , 얼떨결에 공무원이 되었기에 초창기 시절은 입사초부터 천방지축이었고 시련의 연속이었다.

 

- 초임 발령를 기다리며 -

 

76년 6월 공무원 시험 합격 발표를 보고, 공무원의 길을 가고자 그 동안 해오던 학업에 대한 부담없이, 고향에서 친구들과 한가롭게 지내며 여유로운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 진학하며 3년간 부모님과 떨어져 살다 다시 부모님과 같이 생활했는데, 부모님께서는 아들이 공무원 시험 합격하고 집에서 쉬니까, 편안하게 대하시고 간섭을 안하셨다.

그 해 10월 무렵 합격 통보가 왔는데 체신부로 배치되어 대전에 있는 충청체신청에서 보낸 것이었다.

우체국에서 직원들에게서 들려오는 소문이, 연고지 배치를 하기 때문에 미원우체국에 발령이 날 것이라고 하였다.

 

- 우체국과 인연 시작-

 

11월 어느 날 미원우체국에서 연락이 왔다

곧 정식 발령이 날 것이니까 일도 배울겸 발령 전에 미리 출근하라는 거였다.

학교만 다니다 사회생활은 처음이고, 더군다나 한 번도 가본적이 없는 우체국을  설레임과 두렴움을 갖고 출근을 했다.

우체국에서 하는 일이 우편물 접수와 배달하는 우편업무, 전신전화 업무, 예금 보험의 금융업무를 취급하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정부 방침에 따라 예금과 보험 업무는 농협으로 이관 된다고 하여, 아무것도 모르면서 일이 편하겠다고 좋아했다.

직원도 같이 농협으로 간다고 누가 가느냐며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 첫 발령지 우체국 풍경-

 

우체국에 처음으로 갔는데 사무실 뒤에 교환실이 있어, 교환원들 전화 연결 목소리가 하루 종일 시끌벅적 했고, 집배원들은 자전거로 배달했는데 겨울이라 두툼한 옷을 입고 업무하는 모습 등이 신기롭기만 했다.

우편에서는 우편물을 접수하면 오후에 버스에 실어 보내고, 아침에는 배달 할 우편물을 차에서 받아 리어카로 운반해와, 집배원들이 집배별로 분류하여 배달하였다.

사무실과 교환실에는 연탄을 땠는데 이것 또한 처음보는 모습이었다.

 

- 첫 발령지의 시련의 연속-

 

새내기 어려움은 이루말할 수 없이 많았는데, 제일 먼저 전화 공포였는데 당시는 보통 가정집에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전화를 해본 적이 없어 전화 걸고 받는 것조차 어려웠다.

전화 접수와 연결시켜 주는 게 어려웠고 특히, 전보 접수와 보내고 받는 게 여간 힘들은 게 아니었다.

전보는 모르스 부호라고 해서 전신에 사용되는 용어인데,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것으로 주고 받아 새내기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고, 잘 못받으면 다른 직원 바꾸라고 호통을 쳐 낙담도 되고 한마디로 정신을 못차렸다.

우편에서 우표 파는 일도 어려웠고 등기나 소포 내용증명 접수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금융에서 돈을 송금하는 업무도 어려웠고, 지금처럼 지폐 계수기가 없어 손으로 세어야 하는데 이것조차 큰 어려움이고 과제였다.

그리고 새내기에게 떨어진 과제가 지금의 연말정산인데, 하라고 하는 내용을 이해도 못하겠고 쩔절매다 전임자가 인근의 낭성우체국에 근무하고 있어, 그 곳에 자전거를 타고 가 배워오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고, 결국은 당시 경험 많은 교환원이 마무리 했다.

그러면서 일 못한다고 낙인이 찍히기도 하여 시련이 시작되었다.

 

                                                    2026년    3월   2일   약수 홍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