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는 농촌에서 8남매 중 네 번째인 외동딸로 태어났다.
외동딸 하면 귀여움과 사랑의 상징으로 인식되지만, 누나는 정반대로 엄마를 도우며 부엌일을 도맡아 하며 집안의 중추 역할을 했다.
아버지는 어려운 살림에 8남매 자식들 먹여 살리기 위해 일손이 필요했고, 누나를 희생양으로 당시 국민학교도 보내지 않으려 했다.
어머니가 몰래 학교에 가 입학 신청을 하여 우여곡절 끝에 다니게 되었는데, 아버지의 꾸지람이 심했고 동생인 나를 엄마 대신 맡아보도록 했다.
어머니는 매일 들에 나가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누나는 나를 등에 업고 집에서 먼 학교를 다녔다고 하는데 상상이 안된다. 공부시간에는 나를 옆에 앉혀놓고 있었다니, 선생님이나 급우들에게 눈치도 보이고 얼마나 창피했을까 짐작이 가고 괜히 미안하다. 그래 엄마 같은 누나라고 부르고 있는데, 누나 등에 업혀 학교 간 건 기억이 없고, 초등학교 입학하고 매일 누나 손잡고 등교한 것과 문구점에서 계란으로 학용품을 사주었던 기억은 또렷하다.
어릴 적 누나는 매일 추운데서 밥하며 학교 다니느라 겨울철엔 늘 손과 발이 얼어 고생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렵고 고단한 생활을 하며 집안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20대 중반 결혼을 했다. 엄마 같았던 누나가 떠난다는 소리를 듣고 앞으로 집안 살림은 누가 하고 어떻게 사나 큰 걱정이 되었고 두려웠다.
부모님께서 8남매 키우고 가르치느라 누나 시집갈 때 혼수를 적게 해줘 신혼 초 설움도 많이 받았다 한다. 어릴 때 자라면서 사랑도 못 받고 고생만 했으니 결혼해서는 행복하게 살아야 공평한데 세상은 그러지 않았다. 3남매를 낳아 잘 사는가 싶을 때, 청천벽력같이 남편이 저승으로 갑가기 떠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형제들이 매형상가에 가 조문하며 매형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홀로 누나와 아이들 걱정을 하며 많이 울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떠나자 아이들도 충격이 컸고, 주위에서는 앞으로 학교도 못 보낼 거라고 수군거리고 했다. 누나는 이런 언짢은 소문을 듣고 아이들 셋을 앉혀놓고,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희들 공부하는 데까지 보내 줄 터이니, 걱정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달래었다. 남편과 같이하던 농사일을, 혼자 밤낮으로 일하며 채소를 심어 시내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팔며 생계를 꾸리고 아이들 학비를 댔다. 어떻게든 아이들 가르친다는 일념으로 살았기에 고단함도 창피함도 잊고 살았다.
그렇게 해서 3남매를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딸은 중등 영어교사로, 아들 하나는 공기업에, 하나는 공무원으로 만들었다.
요즘 세상 부부 둘이서도 제대로 먹고살기 바쁜 세상인데 누나는 혼자서 3남매를 훌륭히 키워냈으니 참으로 자랑스럽다.
누나의 일생을 보면, 시골에서 8남매의 외동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집안일 도우며 집안 성장을 도왔고, 결혼해서는 남편 일찍 여의고 온갖 고생을 하며 아이들을 길렀다.
어릴 적 고생이 자라서 살아가는데 보탬이 됐다고 위안도 할 수 있겠으나 누나는 한평생 고생만 한 인생이기에 너무 안쓰럽다.
엄마 같았던 누나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이제 지난 온갖 고통과 설움 다 잊고 손자 손녀들 재롱 보며, 남은 여생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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