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지역발전의 선봉에 선 주인공을 처음 만남 건, 1998년 2월 내수우체국장으로 부임한 후 우체국부지매입 관계로 동분서주하던 시기 어느 여름날 오후로 기억하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 계획해오며 오랜 숙원사업인 우체국 이전 대지를 매입하기 위해 적정위치를 물색 중, 두 번째 장소의 소유주와 협의하다 난관에 봉착하여 실의에 빠졌을 때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내수우체국 이전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준 또 다른 한 분의 사무실에서였는데, 그는 ‘우체국에서 매입할 수 있는 곳은 농협창고 거기뿐(현재 위치)’이니, 주인공을 소개해주면서 잘 협의해 보라고 했던 첫 만남이 인연의 시작이자 전설이 됐다.
그러나 그 장소는 이미 당시 면장, 조합장과 셋이 합의하고 공문이 오고 간 상태로, 농협에서 안 팔겠다고 하였기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그러자고 했다.
첫인상의 그는 목소리가 큰 데다가 눈썹이 짙고 우락부락한 외모에 직설적인 사람으로 보여 차갑게 느껴졌지만, 초지일관 만남을 이어가면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가 지역발전에 헌신 노력하고 있는 열정적 인물이라는 걸 알고 신뢰와 친밀감이 생겼다.
몇 개월간의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대지를 매입하고 이듬해 신축이전하여 우체국과 주민의 오랜 숙원사업을 해결하여준 장본인이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공직 시절 그 감동을 잊을 수 없고 우체국 건물을 상상하며 항시 감사한 마음 간직하고 있다.
정년퇴직 후 오랜만에 만나 정담을 주고받다 그가 평생 내수 지역발전에 열정을 불사른 일화를 들으며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살아온 여정은 정말로 장하고 국가사회에 귀감이 되는 위인으로서 세상에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추궁하여 물어봤다.
그가 내수 발전에 헌신 노력한 업적이 너무 많아 잘못 소개하면 누가 될까 걱정도 되었지만, 객관적 사실 위주로만 나열하고자 했다
.
첫 번째, 그는 가정형편 때문에 배우지 못한 게 평생 한이었는데 학교에서 정년퇴직 후 바로, 자기가 봉직한 내수중학교에 손자뻘 되는 학생들과 똑같이 교복 입고 등교하며 졸업을 하고, 이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마침내 늦은 나이에 주성대학교(현 보건과학대학)를 졸업하며, 본인의 한도 풀고 세상의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준 오뚝이 인생을 살아 주위 칭송이 자자한 인물이다.
두 번째, 정년퇴직하자마자 거주지 마을 이장을 맡기 시작하여 내수읍 이장 협의회 회장과 통합 전 청원군 이장 협의회 회장직을 수행하며 내수읍과 청원군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업적을 남겼다.
세 번째, 우체국과 농협을 옮기어 내수읍 소재지를 외곽으로 확장하여 주민 편익과 읍의 균형발전을 이루었다.
우체국은 변두리에 있고 협소해서 주민 이용이 불편한 상태라 오래전부터 옮기려 했지만, 적정 대지를 확보하지 못해 이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가 앞장서 해결하였고, 농협도 당시는 중심이었으나 취급업무가 확대되고 차량 이용이 증가함에 따라 장기적으로 이전이 필요했는데, 백방으로 노력하여 현재의 넓은 공간으로 이전하여 주민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농협과 지역의 발전에 획기적 공헌을 했다.
네 번째, 청원군 재향군인회 회관을 유치하여 건립했다.
재향군인회 이사로 재직하며 재향군인회 회관을 내수로 유치하였고, 이전장소는 당시 허허벌판이던 농지를 매입 신축하여 내수읍의 균형발전에도 이바지하며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었다.
다섯 번째, 덕암천에 청암교 건설과 도로를 신설하여 제반 차량의 원활한 통행과 주민 편의를 돕고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우체국과 농협이 외곽으로 옮기면서 일부 도보 이용자들은 불편함도 있었는데, 도로와 교량을 신설하여 시내버스를 비롯한 제반 차량이 원활히 통행토록 함으로써 지역의 균형발전과 주민 편익을 획기적으로 도모했다.
여섯 번째, 본인 거주 마산2리에 마을회관 건립과 진입로를 확보하여 주민편의와 지역발전을 이뤘다.
당시 마산2리는 내수에서 낙후된 마을로서 회관도 없고 도로가 협소하여 제반 차량 출입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마을회관 건립을 위해 뜻있는 주민들과 협의하면서 자기가 먼저 500만원을 기부하고 십시일반 모금 운동을 전개 신축하였다.
한편 그는 평소 이웃을 위해 뜻있는 일을 하려 마음먹고 있었는데, 회관 2층 건물 비용 몇천만 원을 자비로 충당하여 짓고 이웃의 불우한 가정이 지금까지 살게 하고 있다.
또한, 도로에 접해있는 가옥과 토지를 소유주와 의논하여 원만히 해결하고 도로를 확장하여 주민 편익과 지역발전을 도모하였다.
일곱 번째, 마산2리 도시가스 시설을 설치하였다.
마을 이장으로서 지역발전을 위해 행정기관에 상황설명을 하며 적극적으로 선봉에 서 요청하고 관계 주민들을 설득하여 도시가스를 설치 주민편의를 크게 도모하였다.
여덟 번째, 내수1리(여우바위) 축사 시설을 철거하고 체육시설을 비롯한 휴게 공간 조성에 앞장서 노력하였다.
주민 밀집 지역에 축사 시설이 있어 악취 때문에 일상생활이 고통스럽고 지역발전에 저해가 되고 있었는데, 그는 솔선하여 농장주들하고 원만한 협의 끝에 무리 없이 해결하여 주민편의는 물론 지역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외에도 그는 자신도 넉넉지 못한 어려운 처지에서도 불우이웃돕기와 효도 관광 행사 등 무수히 많은 사회공헌활동을 하여 현시대의 등불이란 생각이 들고 가뭄 속 단비 같은 존경스러운 인물이다.
필자에게는 부임 20여 년 전부터 전개해온 ‘우체국 이전’이란 오랜 숙원사업을 해결하여준 영원한 은인으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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